[금산신문 2005. 03. 31. 기고]

♣ 금산에서도 지진의 진동을 느꼈다

지난 3월 20일에 일본 후쿠오카(福岡)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7의 강진이 우리가 살고 있는 금산에서도 여러 사람들을 놀라게 한 모양이다.

내 아버님은 창밖을 보고 계시다가 ‘내가 착각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물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셨다고 하고, 사실은 어려서도 지진을 많이 경험하셨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옛날 집에는 놋쇠로 만든 문고리가 있었는데, 가벼운 지진은 그 문고리가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는 어른의 경험담이었다.

아무래도 지진이 일어난 시각이 일요일의 늦은 오전이라 많은 사람들이 실외에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동을 느낀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나도 느꼈다'고 얘기하는 경험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공언하는 대로 우리의 건축구조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정도의 가벼운 진동만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막연한 기대 대로만 세상이 움직여 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마는 3년전 추부와 복수지역을 휩쓴 국지성 호우에 따른 피해와 같이 우리의 생활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더욱이 집중호우는 우리 눈으로 비가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어느 정도 피해가 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도 있겠지만, 지진에 의한 피해는 그야 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불안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는 지역에 이런 피해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면 이러 이러하게 대처하라는 교범(보통 우리는 매뉴얼이란 영어단어를 쓰는 것이 더 익숙할 것 같다)이 있겠지만, 얼마나 상세히 상황을 예측해 놓았을지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큰 사고는 사고 직후 며칠(혹은 몇 달)을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며 호들갑스레 떠들다가 흐지부지 우리 모두의 머리에서 잊혀지기 일쑤인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진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단다. 지구의 대륙이 판(板, Plate) 구조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세계의 대륙들은 판게아(Pangaea)라는 하나의 큰 대륙이었다가 서로 떨어져 나가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고 하고, 이 움직이는 지각의 경계에서는 섭입(攝入)이라는 과정이 있어 육지에서 강을 통해 내려보내는 엄청난 양의 퇴적물들을 땅속 깊은 곳 어디론가 집어넣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바다에 버린 엄청난 양의 찌꺼기들을 우리는 바다에서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는 믿지 못할 얘기들을 과학자들은 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약 10개 정도의 대형 판과 20개 정도의 소형 판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판들은 서로 다른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이 과거에는 노르웨이와 붙어 있었고, 스코틀랜드는 북미(北美)대륙에 속했던 적이 있다고도 한다.

대서양이 60년에 2m 정도의 속도로 점점 넓어지고 태평양은 작아지면서 언젠가 아주 먼 훗날에는 대서양이 태평양보다 더 커질 때가 올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 판 구조가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진은 바로 이 판들끼리의 충돌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두 개의 판이 서로 만나는 곳에서 힘의 충돌이 일어나면 어느 한 쪽이 밀려날 때까지 압력이 높아지게 되고, 그렇게 쌓이는 압력이 높아질수록 지진의 강도는 더욱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은 일본의 도쿄(東京)로 알려져 있다. 도쿄는 두 개도 아닌 세 개의 판이 만나는 중심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오죽하면 어떤 영국의 재난전문가는 도쿄를 가리켜 '죽음을 기다리는 도시'라고 까지 불렀다고 한다.

지진에 관한 한 도쿄는 1923년에 일어난 간토(關東)대지진으로 20만명의 희생자를 낸 이후 80년간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바로 이 조용한 모습 때문에 안에서는 계속 압력이 높아지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판(板) 내부에서도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전혀 예측도 불가능하고 따라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을 거의 할 수 없이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당할 수밖에 없단다.

우리나라도 아무리아판(板)이라는 비교적 신생된 소형 판 위에 있어 안심할 수는 없다고도 하고, 이웃나라 일본이 워낙 큰 판 위에 있어 그들이 당하게 될 것으로 우려되는 무시무시한 지진의 피해를 덩달아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한반도 지진대가 심상치 않아 우리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해저 지진의 발생횟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 2000년 10회에서 2001년 16회, 2002년 21회, 2003년 21회, 2004년 24회 등 최근 5년간 92회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우리가 남아시아의 쓰나미에서 경험하였듯이 지진해일도 무서운 천재지변인데, 역사상 지난 100년간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진 지진해일이 6건이나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책이 있을 법 한데…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지진을 전공한 전문가의 숫자가 태부족이고(기상청 직원이 천명이 넘는데, 지진 전공자는 고작 7명이란다) 사태를 미리 대비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에 우리는 너무나 무지하다.

 이런 재난에 대한 대비를 하려면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일을 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빨리빨리'와 '대충대충'이 지배하는 조직 시스템에서는 이런 준비가 너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 의료분야를 한 번 보도록 하자.

미국의 경우 우리가 아파서 병원을 찾으면 담당의사가 먼저 꺼내는 것은 청진기가 아니라 체크리스트(check list)이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상황에 따라 미리 만들어진 이 리스트를 들고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겠다는 것인데, 그 내용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일상적인 질문내용만 열거하는 데에도 5분 이상, 조금 복잡한 경우에는 15분 이상 진찰 전에 질문을 주고받는 것이다.

‘어디가 아픈가요?’‘언제부터 그랬나요?’ ‘담배와 술은 하시나요?’‘가족 중에 심장질환, 암, 갑상선질환 등등등 을 앓으신 분이 있나요?’ 와 같은 일상적인 질문에서부터 ‘동성애 기질은?’ ‘성격은?’ ‘학력은?’ ‘혹시 부모가 이혼한 가정?’ 등등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의사의 머리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리스트의 질문항목을 이어가는 것인데,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하나라도 빼먹지 않기 위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지만, 이런 서비스의 뒤에는 항상 고가의 비용이 들기 마련이어서 환자는 그 대가로 적어도 100$ 이상의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아픔이 따르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기 전에 5분 내지 10분을 질문만 한다면 그걸 참고 고분고분 대답할 만큼 참을성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내 생각에는 아마도 10%를 절대로 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참을성있게 방문하는 환자마다 친절히 같은 질문을 꼬박꼬박 하고 있을 의사는 또 얼마나 될까?

아마 마찬가지의 결과일 것이다.
이처럼 시스템이 일을 하게 만들려면 어느 한 분야의 종사자에게만 책임을 지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원 전체가 불편함을 감수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시스템이 일을 하려면 '행정편의적인 것 같고', '불필요한 것 같고', '몇개는 건너뛰어도 충분할 것 같은' 충동을 억누르고 구성원 전체가 그 시스템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빨리만 가려는 우리들의 '전통적인' 조급증을 해결하지 않고는 재난방재에 만전을 기하는 사회, 시스템이 일을 하는 사회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