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신문 2004. 08. 29. 기고문]

♣ 이제 끝나 가는 바캉스의 계절
그토록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도 계절의 변화는 견디지 못하는 듯 몇 차례 비를 뿌린 뒤부터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이제 가을이 시작하는 모양이다.

휴가란 말 그대로 바쁜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정리하고 또 재충전하기 위해 필수적인 생활의 한 분야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하지만 휴가란 것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중 어느 계절에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무더위에 농사짓는 분이나 밖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지신 분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요즘 웬만한 직장 치고 냉방이 안되어 있는 곳이 별로 없다 보니, 정말 무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오히려 피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는 한여름에 모두 떠나는 여행 때문에 사람에 치이고 숙박시설도 부족한데다? 더운 날씨에 고생하지 않으면서, 편안하고 안락한 봄이나 가을에 여유 있는 여행을 하는 것은 어떨까?

「바캉스」란 말은 기실은 영어로 풀이하면 Vacation, 다시 말해 긴 휴가, 혹은 방학이란 뜻으로, 우리와는 사정이 다른 프랑스 사람들의 휴가를 뜻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 여름 휴가에 목숨을 건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한여름의 3개월을 잘 놀아야만 올 한해를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프랑스 파리의 여름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 찾아간 관광객들이 없으면 죽음의 도시와 같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거나, 작년에 이상고온이 몰아친 파리 시내에서 젊은 사람들은 모두 바캉스를 떠나서 쓸쓸히 남아 집을 지키던 노인들이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수십 명이 돌아가시는 불상사까지 발생할 정도일까?

그들은 여름 휴가가 3개월씩이나 되니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길어봐야 휴가가 일주일 전후일 테니, 그런 사치를 바라고 휴가에 목숨을 걸 수는 없는 일이겠다.

♣ 왜 우리는 집을 떠나는 걸까?
‘집 떠나면 고생'이란 속담은 한번만 여행을 떠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실하게 깨닫는 말이듯이, 정말로 집 떠나면 고생이고 긴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래도 우리 집이 제일 좋다'고 외치면서도 다음에 시간이 나면 우리는 또 짐을 챙긴다.

왜 우리는 휴가를 떠나는 걸까?
그것은 우리는 자신의 삶이 힘들수록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고, 이 욕망을 건전하게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여행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삶에 쫓겨 그 욕구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만…

어떤 시인은 “진정한 삶은 다른 곳에 있다”고 읊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지금의 여기가 너무나 진부하고 답답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어렵고 풀기 힘든 문제들로 가득한 현실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 미지의 세계로 이동하고 싶어한다.
이동은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휴가와 여행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착된 일상의 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고, 힘든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멋진 생활을 꿈꾸게 하기에 우리는 어디로라도 떠나야만 했다.
결국 돌아온 현실은 그대로일지라도, ‘그래도 우리 집이 제일 좋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떠나야 했다.

비록 교통체증과 비싼 음식값, 숙박료에 후회하고, ‘사람 구경을 나왔나?' 싶을 정도로 인파에 치일 지라도, 그리하여 ‘괜히 떠났다. 집에서 찬물에 발 담그고 수박이나 깨 먹을걸' 하는 짜증과 실망을 할지라도. 게다가 해외여행이라도 하는 사람이라면 비행기 테러는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라도 우리는 떠나야 했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나의 마음에 남은 것이 휴식 후의 안락함이 아니라 전쟁을 치르고 난 것과 같은 피곤함뿐일지라도 우리는 떠나야 했다.

이제 바캉스도 막바지에 접어든다.?
이번 휴가를 잘 보냈든 잘못 보냈든, 혹은 아예 휴가를 가지 못했든 우리 모두는 내년의 멋진 휴가를 꿈꾼다. 내년에는 ‘나 홀로’ 혹은 ‘누구와 함께’ ‘어디론가' 더 멀리 떠나 알찬 휴가를 보내고 싶어한다.

어쩌면 바캉스의 후유증으로 힘든 몸에 혹시는 몸살감기를 얻었을지라도 우리는 다시 꿈을 꾼다. 내년에 다가올 낭만적이고 행복한 바캉스를…
그리고는 열심히 다시 기운을 내어 현실의 힘든 생활과의 전투를 준비한다.

♣ 휴가를 못간 사람은 열등하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싶은 여름에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방콕(방구석에 콕 박혀 지낸 사람이란 뜻)'한 사람들도 알고 보면 의외로 많다.?

우리는 의례 여름이면 시간을 내서 바닷가를 한 번 갔다 와야 가장으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의 책무와 권리를 다 한 것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방콕'족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생각보다 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금산에는 10분만 차를 타고 나가면 산과 강과 들이 펼쳐져 있어 동해안의 어느 바닷가를 가지는 못했더라도, 냇가에서 고기 잡아 어죽 한 그릇 끓여 먹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시골 산다는 것, 특히 금산에 산다는 것이 여름이면 더욱 풍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든든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길이 들어있던 나는 아이들이 크면서 다른 식구들이 모두 바쁜 일정으로 함께 떠나는 시간을 만들지 못해 이번 여름의 휴가는 가끔 가까운 진악산과 산안 산골, 혹은 금강변을 잠깐씩 찾아 더위를 식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렇게 나처럼 휴가를 못 간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라는 뜻으로 넋두리를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