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신문 2004. 08. 12. 기고문]

▶ 공권력이 붕괴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한다.
내 집에 난 불이 아니고, 내가 직접 멱살잡고 싸우는 일만 아니라면 구경이 그렇게 재미있다는 것이고, 특별히 나와 감정이 좋지 않았거나 너무 힘이 세거나 잘 살아서 질시의 대상이었던 사람의 일이라면 겉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속으로 더욱 고소하고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불이 언제 내 집으로 옮겨붙을지 모르는 일이고, 또 그 싸움판에 내가 끼어들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에, 남의 불행을 그리 좋아하면 끝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매스컴에서는 한동안 ‘경찰들 왜 이러나?' 하는 종류의 기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된 소위 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개혁바람으로 검사가 ‘검사스럽게' 된다든가 노건평씨가 판결을 받은 뒤 담당판사에게 항의전화를 했다든가, 서해에서 발포를 하지 못하게 할까봐 아예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해군들까지, 많은 공직자들을 맥 빠지게 하는 여러 사건 중 하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있던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면 사실 서민들의 입장에서야 어차피 강건너 불구경이고, 그간 ‘주는 것 없이 밉게' 은연중 쌓여있던 불만도 있고 해서 은근히 고소한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다.

하지만 그런 힘있는 사람들이 망가지는 것이 단순히 강건너 불이 아니라 내 집에도 큰 불이 옮겨 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해야 한다.

그들이 가진 힘이란 것이 단순히 우리를 괴롭히는 폭력이 아니라 이 사회가 지탱되는 큰 힘이고, 그 힘이 망가진다면 그 공백에서 고생할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서민들이기 때문이다.

대학 다닐 때 장발족으로 단속당해 머리를 잘리던 시절에 파출소 구경을 해본 적은 있지만, 길거리에 있는 경찰서와 파출소에 별로 갈 일이 없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15만명이라고 하는 그 많은 경찰관들이 왜 필요한지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살아오다가 몇년 전에 읍파(읍내파출소)에서 30분 가량 머물 일이 있었는데, 그 다음부터 경찰관이 내 병원에 찾아와 아픈 증상을 호소하면 항상 업무과다에 의한 과로 때문에 생기는 병이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초저녁의 파출소는 가출한 할머니를 찾는 사람부터 대낮부터 먹은 술로 문제가 생긴 사람,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뒤엉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다, 계속 걸려오는 민원전화를 처리하느라 동분서주하는 경찰관들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 억울하게 희생된 두 경찰관

요즘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 끝없이 계속되어 취중에 지구대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거나 교통 단속에 거세게 항의하는 것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지경이 되더니 급기야는 며칠 전 두 경찰관이 성폭행 피의자를 검거하다가 흉기에 찔려 숨지는 참으로 안타깝고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게다가 흉악범을 잡기 위해 출동하는 자리에 이들이 갖고 있던 무기라고는 고작 삼단봉 뿐이었다고 하니, 만약 이들이 총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억울한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흉악범죄와 대결하는 경찰은 늘 생명과 신체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경찰관의 직무는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위험도가 높다.

과거 그 유명한 ‘로드니 킹'사건에서 보았듯이, 범죄자에 대해서는 무지막지한 공권력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행사할 권리를 갖고 있는 미국에서도 -물론 이 나라는 총기를 마음대로 살 수 있는 험악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해마다 평균 400명 가까운 숫자의 경찰관이 범죄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는 시위를 해도 경찰이 쳐 놓은 폴리스 라인을 넘으면 즉시 체포하고, 시위현장에 즉결법정을 설치하고 판사가 즉석 영장을 발부하며, 공권력 집행과정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즉시 구금시키는 나라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불만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이들에게는 개인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는 더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얼마 전 대전에서 경찰이 용의자를 검거하면서 총을 쏘았고, 그가 총에 맞아 숨지자 경찰은 “차를 향해 총을 쏴도 됐을 것을 사람을 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고, 재판부 역시 달아나는 용의자를 추격하면서 경찰이 총기를 사용해 부상을 입혔다면 국가에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여, 경찰의 총기 오남용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러가지의 탁상행정식 총기사용규정을 두고 총기를 사용하라고 한다는데, 이 규정을 만든 사람더러 일선에서 범죄자를 잡으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총기 사용이 이처럼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범죄 수법이 날로 흉포화되고 있어 일선 경찰서에서는 총기 사용을 두고 항상 고민에 빠져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경찰들 사이에서 ‘총을 쏘지 말고 던져 맞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일까?

다른 예를 한번 더 들어보자. 연쇄살인마 유영철 사건에서 가장 큰 이슈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덤벼드는 유가족을 발로 찬 경찰관을 욕하는 것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유영철에게 덤벼든 그 유가족은 공권력에 도전한 것이라는 견해도 인터넷 상에서 만만치 않게 흘러나왔다. 물론 발로 찬 경관을 잘했다고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억울하니 아무 행동이나 해도 되고, 분하다고 내가 상대방을 심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법치국가가 아니다. 따라서 불행의 단초를 만든 사람은 그 유가족 자신이라고 해도 그 분은 -물론 무척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을 것이다.

▶ 경찰의 사기를 죽이면 결국 피해자는 우리 자신이다

이렇게 경찰관이 직무를 수행하며 폭력을 쓰게 되면 이들을 과잉진압이니, 공권력 남용이니, 인권침해니 하며 매도하는 세상에서 경찰관들의 직무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우리들 시민들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자연스런 이치를 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물론 범죄자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량한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경찰관의 생명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보호되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얼마 전 가까운 대전교도소에서 발생한 교도관이 재소자에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말해줄 것이다.

인터넷에 의견을 올린 네티즌들은 『권위란 개인이나 집단 모두 자기들이 세워야 하는데, 경찰이 무시당하는 것은 경찰 스스로에게 그 책임이 있고, 강력한 경찰이 되려면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하며, 제도적으로도 뒷받침해야 한다.』거나, 『우선은 경찰 자신이 먼저 개혁하여 신뢰받는 경찰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 개혁이 이루어져야만 국민도 먼저 공권에 의존하게 되고, 공정하고 엄정하지 않으면 그 공권은 이미 공권이 아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이 의견에도 나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닭과 달걀의 관계'만을 갖고 책임소재를 따지다보면 해결방법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공직자는 ‘명예'를 먹고 산다. 일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명예심을 잃고 의욕이 꺾인 경찰관에게 왜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면 기운이 나서 일할 사람이 있을까?

명예에 대한 자긍심 없이 목숨을 건 일을 하라고 우리가 요구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 내가 먼저 믿고 따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우리 사회가 안정되고 마음놓고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공권력을 살리자.
경찰관이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