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신문 2005. 01. 13. 기고]

＊공직자 구속사건을 되돌아본다

해가 바뀌면 새로운 희망으로 좋은 덕담들을 주고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불경기로 얼어붙은 우리 사회의 걱정 위에 우리 지역에는 또 다른 찬바람이 불고 있어 많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전현직 과장급 공무원들이 구속되고 재판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바로 그것인데, 이로 인해 민심은 나빠지고, 공무원들은 일할 의욕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쳐대는 개혁의 바람이 우리 주위에 맴돈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너무 오래 계속되다 보니 '개혁피로'라는 말까지 돌고 있기도 하지만, 과거보다 개혁의 필요성과 그 바람이 한층 더 불고 있는 것 또한 나라 전체의 분위기인 것 같다.

한 조직이 과거의 틀에 박힌 관행을 깨고 환골탈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또 기득권층의 저항도 강하기 때문에, '내부자의 고발'이 개혁의 아주 큰 원동력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칼을 잘 쓰면 우리에게 유용한 도구가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다치게 하는 흉기도 될 수 있듯이, 이 '내부자의 고발'이 순수한 개혁에의 열망이 아니라 어떤 특정 대상을 음해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그 결과가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전락하게 되면서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몇 가지 상황들을 짚어 보도록 하자

<장면 1>
지인(知人)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금산군 노인회에서 앞장서서 '요즘 금산의 인심이 좋지 않으니, 이 상황을 빨리 끝내달라는 탄원서'에 주민들의 서명을 받고 다니고 있는데, '어느 면의 이장들에게 검찰청에서 전화를 해서 군(郡)에서 지급하기로 한 돈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를 일일이 물어 봤다더라.

멀쩡한 사람도 검찰청에서 전화를 받으면 죄 지은 것 같아 기분이 나쁜 것 아닌가. 그리고 구속된 사람들이 나쁜 짓을 했으니 구속된 것 아니겠는가. 나쁜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탄원서에 서명할 수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일하기가 힘들다.”

<장면 2>
평생 경찰관으로 외길을 걷다 정년퇴직한 어느 원로 한 분과 저녁을 먹다가 들은 얘기.
“내가 평생 죄지은 사람을 잡아들이는 일을 한 사람이고, 부정한 공무원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공직을 수행하다 보면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예산을 집행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일을 하다 보면 상급기관에 부탁을 하기 위해 갈 일이 많은데, 찾아가서 명함만 들이밀면 일이 풀릴 수 있겠는가.
하다 못해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과자라도 한 봉지 사들고 가서 얘기를 해야 부드럽게 풀리는데, 공무원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자기 돈 써 가며 그런 일을 하겠는가.

 그런 돈을 편법으로 마련한다는 것이 물론 법규를 적용하면 죄를 지은 것이지만, 나도 현직에 있을 때에는 그런 돈은 만들어 썼다. 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면 나쁜 놈이지만, 내가 알아보니 지금 구속된 사람들의 사안은 일을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생기는 일이더라. 그것이 죄라면 공직자 중에 그런 죄 안 지은 사람은 아마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장면 3>
금산의 평범한 주민이 모인 어느 계모임(전직과 현직공무원이 각각 1명씩 있다)에서 이 문제가 화제가 되었다. 대부분의 계원들은 “또 해 먹은거야. 공무원은… ”하는 반응을 보인다. 전·현직 공무원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내가 나서서 “어느 전직 경찰관에게 들은 얘기인데, 이러저러한 측면이 있습디다. 그러니 그 사람들을 무조건 비방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더군요.” 하고 거들자 그제서야 현직 공무원이 입을 뗀다. “일을 하다 보면 공식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그런 돈이 필요할 때가 많아요.

그런 돈을 마련하려면 아무래도 편법을 쓸 때가 있는 것 아닙니까? 가정에서도 가장이 마누라와 자식 몰래 쓸 돈이 가끔 생기기도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고 그 돈이 바람피는데 쓰이는 것은 아니지요. 나도 같이 국록을 먹고 있어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억울한 측면이 많아요.”
그리고는 구속된 공직자들을 동정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장면 4>
2004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 제야행사 현장.
신정교문화원장의 낭랑한 송년사와 36번의 북소리가 울리고 김행기군수의 신년사에 이어 하늘에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그리고 땅에는 촛불잔치가 열리던 다락원광장.
신년 덕담을 마친 새벽 1시. 몇 사람이 모여 새해를 맞는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모여 맥주를 한 잔 기울인다.

좋은 말들이 오가는 도중에 참석자 중 어른의 한 분인 금산경찰서의 양낙운서장이 건배를 제의하면서 외친 구호가 너무나 인상적이다.

“사랑과 화합을 위하여”

요즘 우리 지역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타개하는 가장 적합한 구호를 제창한 양낙운서장의 총기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과 화합인 것이다.
올 한 해 술자리의 건배 제의는 바로 이 구호였으면 좋겠다.
“사랑과 화합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