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신문 2004. 12. 09. 기고]

일본에서 입국수속이 유난히 늦기에 이유를 알아 보니 입국신고서에 기재할 내용을 모두 적지 않았기에 수속 절차 중에 적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별 것 아닌 내용.

공항 출국장에 나오자 우리를 기다리는 도바타 히가시 클럽 측에서 나구라 마스오(名倉万壽夫)회장, 이노우에 히로시(井上 博司) 국제봉사 위원장, 후지사키 다카오(藤崎 隆生), 다무라 가츠오(田村 和生), 미나미 요시카츠(南 芳勝)씨 등의 낯익은 회원들이 나와 주었고, 이들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는 성심에서 우러나오는 태도를 보여 주어 우리를 감동시켰다.

아뿔싸. 불상사 발생.
사물놀이를 위해 가져 온 악기 중 장고 하나가 허리가 깨져 버렸다. 가이드 최인식부장의 말로는 악기 6개 중 몇 개를 특별히 부치는 짐으로 다 분류한 줄 알았는데, 일부 우리 회원이 시간이 쫓기자 빨간 표딱지를 부쳐야 하는 것을 모르고 그냥 실었기 때문에 보상을 받으려면 한바탕 싸움을 각오해야 한단다.

우선 시간도 없고,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 즐거운 만남을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인데, 얼굴 붉힐 이유는 없겠다. 다행히 그동안 역대 방문회원들이 선물한 물건 중에 장고가 하나 있단다. 우선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그 다음 일정을 마음놓고 소화할 수 있겠지.

어려운 시간을 내서 떠난 여행이니 우선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는 무언가 한가지라도 더 보고, 더 느끼고, 우리가 배울 점, 버릴 점, 취할 점들을 많이 겪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그런 면에서는 가이드 최부장이 적격인 것 같다.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고, 이 분야에서 관록이 몸에 밴 사람으로 보이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개 조금은 게으른 경향이 있는 대신에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또 큰 사고가 날 기미가 보이면 본능적으로 막아내는 재능이 있을 것 같다.

우선 공항에서 우리가 향하는 목적지 쪽으로 가장 가까운 다자이후 천만궁(太宰府 千萬宮)으로 향한다.

다자이후란 과거 서기 3세기 경 한반도나 혹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의 출입국관리소와 같은 역할을 하던 관청이 있던 곳이라는 설도 있고, 일본 최초의 국가인 야마타이가 큐슈지방에 있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런 저런 고대사의 중심지가 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천만궁(千萬宮)은 스가와라 미치자네(管原道眞)라는 분의 신위를 모신 신궁(神宮)인데, 신궁(神宮)이라는 이름은 다른 신사(神祠)와 달리 - 덴노(天皇) 일족을 모신 곳만을 일컫지만, 유일하게 황족이 아닌 사람을 모신 곳으로서 궁(宮)으로 불리는 곳은 이 곳이 유일할 정도로 이 스가와라라는 사람은 높게 추앙받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 스가와라는 일본에 한문을 전해준 것으로 유명한 왕인박사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는데, 6세기 말에 당대 최고의 학문의 경지를 가졌던 분이라고 한다.

덴노의 최측근에서 최고의 권력가 중 한 사람으로 군림하다가 권력투쟁에 밀려 이 곳 큐슈지방까지 유배를 왔다가 어려운 생활 중에 세상을 떴지만, 그의 높은 학문을 숭상하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학당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다른 여행에서 와 본 적이 있지만, 아내는 처음 방문이다. 혼자 왔을 때에도 둘째 딸의 대학입시가 가까웠기에 학문의 신이라는 스가와라 미치자네(管原道眞)의 신사에 거금 500엔을 투자, 합격을 빌었었는데, 아내는 막내아들 민재의 일류대 합격을 기원하자며 '소원을 비는 나무판'(2년 사이에 값이 변하지 않았네)을 사서 정성껏 무언가를 써 넣고 그 판을 게시판에 걸어 놓는다.

아내와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이 먼 땅에서 빌고 있으니 이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다면 장소가 어디인지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부부는 마치 아들이 이미 대학에 합격이라도 한 것처럼 즐거워했다.

입구에 앉아있는 청동 황소상은 스가와라 미치자네(管原道眞)가 죽고 장사를 지내기 위해 소수레에 유해를 싣고 가던 중 황소가 어느 지점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기에 그 자리에 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어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라고 하는데, 그 황소의 뿔을 한 번 만지고 다시 자신의 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단다.

돈을 내는 것도 아니기에 속는 셈 치고 공짜로 머리 좋아지는 일을 해보려 했더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황소의 양 뿔만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고 있었다.

멋진 연못을 지나는 과거/현재/미래의 세 다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마침 국화축제와 7·5·3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화분에 국화를 가꾸어 놓은 전시장에서 갖가지 기가 막힌 국화들을 보고 나니, 이번에는 국화를 이용한 분재를 전시한 곳이 있다. 이어령씨가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음직한 곳은 일본의 도처에서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도 또 한 번 확인을 하게 되었다.

유난히 기모노를 입은 어린 아이들이 많아 의아했는데, 7·5·3축제라는 것이 7살, 5살, 3살의 아이들이 건강하고 공부 잘하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신궁에 기도하는 이벤트라서 그렇게 아이들이 많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우리가 방문하기로 예정한 11월 20일(土曜日)부터의 4일간은 일본에서도 11월 23일이 추분(공휴일)인 관계로 주 5일제를 실시하고, 또 22일을 샌드위치데이로 쉰다면 4일간의 황금연휴기간이 된단다.

오늘(20일)은 토요일이라 많은 남녀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단체관광 중이었는데, 역시 학생들도 깃발부대(안내자가 각종 색깔의 깃발을 들고 다니면 여행객들은 그 깃발만 보고 따라다닌다고 해서 붙은 이름)가 되는 것도 어른 관광객들과 별반 다름이 없어 보였다.

어찌 됐건 학생들이 단체로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여행객들이 보기는 힘들어 '좋은 구경을 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세종입시학원을 경영하는 최찬열원장은 '한국 같으면 모두 몽둥이찜질 감'이라며 흥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여학생들은 교복치마가 무릎 위 15-20cm 정도 되는 미니스커트이고, 남학생들은 장발족이 너무 많아 교복의 단정한 아름다움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점심식사는 식당 안에서 도시락을 먹었는데 그리 거부감이나 부담은 없이 담담한 식사였다.

점심의 액센트는 한국인 유학생이 설명하는 명태를 말려 갖은 양념을 넣은 밥에 뿌려 먹는 조미료와 다자이후 천만궁의 특산품 중 하나인 찹쌀떡이었다.

그 조미료는 식당에서 운영하는 가게에서 530엔 + 부가세를 총 500엔으로 깎아 준다고 해서 동행한 몇몇 회원들과 함께 싼 맛에 하나 샀다.

찹쌀떡은 원래 스가와라 미치자네(管原道眞)를 모시던 어떤 할머니가 매화잎을 넣은 찹쌀떡을 만들어 판 돈으로 모셨다고 해서 유명한데, 요즘은 매화잎은 빠졌다고 한다. 마치 우리의 찹쌀떡과 호떡의 중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맛이 친근했다.

신토(神道)의식을 거행하는 궁내(宮內) 사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제(司祭)의 통제에 따라 질서정연하고 엄숙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고, 수많은 기다리는 사람들도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우리와 다른 모습을 또 하나 본 것 같았다.

나오는 길에 1,000엔샵에 들러 물건들을 구경했는데, 2년 전에 처음 왔을 때에는 신기하더니 두세번 보고 나니 별로 손이 나가지 않았다. 정해천 회원은 따님에게 줄 선물을 하나 골랐다고 좋아했고, 다른 많은 회원들도 이것 저것 들쳐 보며 부담 없이(제일 비싼 것이 우리 돈으로 만원이니까)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