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신문 2005. 01. 20. 기고]

(7) 다시 빚을 지고, 아쉬운 작별을 하고

이제 기타큐슈로 돌아올 시간.
오늘 저녁식사는 다시 도바타 히가시 클럽에서 푸짐한 만찬을 준비했단다. 점점 빚은 쌓이고, 일본어로 갚아야 할 온(恩)은 너무 많지만 그 분들의 성의를 뿌리칠 수는 없는 일.

저녁에 도착한 만찬장은 도바타시(戶畑市)에서 아즈마 가츠히코(東 克彦) 회원이 운영하는 하마초( :원래는 삼수변인데, 한글 97에 없다長). 사장이자 주방장인 아즈마씨는 몇 번의 상호 방문으로 안면이 있기는 하지만 요리복을 입은 모습이 카리스마 그 자체이다.

그는 인사말씀 중에 우리의 한우에 해당하는 '흑우(黑牛) 중에서도 후쿠오카 아래에 있는 사가현(佐賀縣)의 유명한 종자, 그 중에서도 좋은 부위를 특별히 주문하여 스키야키를 준비했으니 아무쪼록 즐거운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인사말을 하였고, 우리는 큰 박수로 화답하였다.

이윽고 식사 시작.
맥주를 높이 들고 건배를 외친 다음 그 특별하다는 스키야키를 맛보니 정말 입에서 고기가 살살 녹는다. 그들이 니혼주(日本酒)라고 얘기하는 사케(淸酒)를 주고 받으며 정담을 쌓다 보니 어느새 취기가 오르고 술자리는 무르익어 갔다.

특별히 도바타 히가시 클럽의 스타는 간사인 다카하시 지오코(高橋 千子)씨인 것 같다. 너무나 금산을 자주 방문하여 금산 클럽 회원 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얼굴도 자주 대한 데다가, 성격이 쾌활하여 농담도 잘 하고 술도 잘 하는 덕에 도바타 히가시클럽 방문객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분인데, 이제 홈그라운드에서 우리를 대하니 1년에 한 번 만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마치 매일 대하는 이웃과 술자리를 하는 듯한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이 분 덕에 정말 스스럼없는 유쾌한 자리가 더욱 빛이 나고 있었다.

이윽고 자리가 파하고 우리는 그분들의 환송을 받으며 헤어졌다. 호텔에 돌아온 우리는 일단 각자 자신들의 방으로 헤어졌지만, 술도 한 잔 했겠다, 젊은 사람들이야 어디 넘쳐 나는 기운을 그냥 삭이고 잠들 수는 없는 일.

문정우 사장과 최찬열 원장 등 몇 명이 길가 포장마차에라도 가서 한 잔 더 하잔다. 나는 뿌리치고 그냥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 날 얘기 들어보니 몇몇 팀들은 또 한 잔을 한 모양. 기운들도 좋다.

오늘은 11월 23일(火)로, 이제 여행의 마지막 날. 회장으로서야 우리 회원들이 마지막까지 아무 탈 없이 집에까지 들어가는 것을 보아야 마음이 놓이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겠다.
오늘도 무사히… 그리고 즐겁게…

오전에는 우미노 나카미치(海 中道)에서 수족관과 돌고래쇼를 보기로 했다. 넓은 부지에 여유롭게 자리잡은 공원이 부럽기는 했지만, 돌고래쇼도 수족관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을 넘지는 못해 다소 실망스러웠다.

 공원에서 한시간을 주겠다는 가이드의 말에 몇 사람은 코끼리 기차를 타고, 그리고 몇 사람은 자전거를 빌려 공원을 한바퀴 도는데, 어디를 보아도 깨끗하게 잘 단장된 모습과 정성스레 사육되는 여러 동물들이 바로 옆에서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버스로 돌아오니 도바타 히가시 클럽의 나구라 마스오(名倉万壽夫)회장이 기다리고 계시지 않는가. 여행에 참가하지 못한 회원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주어야 하겠다며 직접 들고 오셨단다.

정말 이 빚을 어떻게 다 갚는단 말인가…
이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이자 하이라이트인 야나가와(柳川) 방문이다.

젊은 시절 도쿄(東京)에서 대학을 다니셨고, 사업을 위해서도 일본, 특히 이 곳 큐슈지방을 자주 방문하신 아버지께 '가장 기억에 남고, 여기는 한 번 꼭 가보라고 추천할 곳은 어딘가요?'하고 여쭈었더니 추천해 주신 곳이 바로 이 야나가와이다.

가기 전에 우선 배를 채워야 하겠는데, 도바타 히가시 클럽측에서 어제의 만찬을 준비해주지 않았으면 우리는 일본식 고기부페에서 준비해 간 소주로 우리끼리 파티를 하려고 했었다. 값도 저렴하고 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는 데다가 우선 푸짐하다는 장점이 있어서 꼭 한 번 가보자고 했더니 가이드는 이번 점심식사밖에 없을 거란다.

고기부페에서 배를 채운 우리 일행은 야나가와에서 배를 타고 운하를 한바퀴 돌면서 일본식 '베니스의 곤돌라' 맛을 보는 셈인데, 30분 코스와 한시간 코스가 있단다.

 '뭐 마찬가지이겠지' 하고 30분 코스를 택했는데, 나중에 아버지께는 '아쉽다’는 말씀을 들어야 했다. 미리 사전지식을 갖고 가면 우리가 지나가는 곳이 왕궁의 터라든가 엔카의 원조인 작곡가 고가 마사오의 생가라든가 하는 역사적인 곳을 볼 수 있었는데, 우선 우리가 일본어를 알아듣기 힘들었고, 30분 코스에는 그런 곳이 들어 있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회원들이 색다른 경험을 했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란 사실은 배 위에서 볼 때 육지에 놀고 있던 중학생쯤 되는 아이들과 얘기를 하다가 우리가 '강고쿠징(韓國人)'이라고 말했더니 갑자기 얘들이 '배용준, 최지우, 유진' 등의 우리 연예인들의 이름을 똑똑한 발음으로 외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그 중 한 학생이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팬! 팬! 팬!'하면서 자랑스레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한류(韓流)의 바람이 분다는 말은 들었지만 야나가와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어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에 그 학생들의 반응은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한줄기 소나기와도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했다. '이제부터 정말 잘 해야 하겠구나.'

사실 그동안 일본인들이 그들의 본심(혼네, 本心)을 보이지 않기에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우리 보기를 우리가 말레이지아나 아프리카 사람들 보듯이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언제나 문명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한 수 아래의 종족으로 보고 있었는데, 이런 편견을 배용준씨가 말끔히 씻어 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랐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4일 예정의 금산로타리클럽이 도바타 히가시 클럽을 방문하는 자매클럽 방문일정은 모두 끝이 났다.

이제 돌아가는 일 뿐.
후쿠오카 시내의 캐널시티 방문 일정이 남았는데, 시간이 빠듯하다. 회원들이 '믿을 만한 곳에서 선물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까운 면세점에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줄 간단한 선물을 사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 8시 넘어 후쿠오카 공항을 출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4일간 애써준 가이드 최인식부장과의 작별.
여행사에서 마련한 버스로 밤 10시 30분 출발, 오는 도중 휴게소에서 간단한 식사를 한 뒤 금산까지 귀가. 도착하니 새벽 2시. 3박 4일의 일정을 이렇게 써도 되나 싶다.

출발하는 날 새벽 1시에 출발하여 4일을 넘긴 97시간만에 집에 돌아왔으니 너무나 알뜰한 시간을 썼고, 너무나 보람되고 너무나 재미있는 좋은 여행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빚을 졌고, 너무나 큰 친목을 만들었고, 너무나 많은 희망을 보았다.

헤어지기 직전에 회원들에게 한 인사말로 끝을 맺어야 하겠다.
“좋은 여행이었고 우리 마음에 남은 것도 많지만,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많은 빚을 졌습니다.

내년에 누가 회장이 되든 간에 우리 클럽을 방문하는 도바타 히가시 클럽의 회원들을 영접하는데 기왕에 빚을 졌던 사람들, 바로 우리가 앞장서서 그 수고를 해 줍시다.” 그리고 회원들 모두는 나의 제안에 공감하는 표정을 지어 주었다.

고맙다. 우리 회원들.
자랑스럽다. 금산로타리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