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신문 2004. 11. 25. 기고]

11월 17일에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세월이 지난 다음에 우리가 과거의 어떤 날을 기념하여 역사의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하는 중요한 사건들이 그 당시를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하루 하루 살아가는 중에 나타나는 생활의 연속 중 하나였을 뿐인 경우였을 것이다.

예를 들면 8·15 해방이라는 것도 기실 따지고 보면 일본이라는 거대한 제국주의 국가가 그 명이 다해 망하게 되어 있었던 시대적 변화의 한 표현일 뿐이지, 하늘에서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선물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8·15 해방'이라는 역사적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후대 역사가들의 몫이지만, 당시를 살던 사람 중 일부 선각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식자(識者)들 마저도- 지배받던 36년이라는 세월의 힘에 눌려 일본이라는 공룡이 쓰러질 것이라는 생각을 거의 하기 힘들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지난 11월 17일에 치러진 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은 해마다 치러지는 행사이지만, 금년에 우리가 살고 있는 금산으로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바로 우리의 아들딸들이 바로 우리 지역에서 처음 수능시험을 치를 수 있는 첫 해이기 때문이다.

객지에서 수능시험을 본다는 것
세상만사가 경쟁의 연속일진대 교육계에서만 경쟁의 원리를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교육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사교육을 억제하려 하고 교육평준화를 외치더라도 그것이 공염불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시도로 인해 입시제도는 개선(改善)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개악(改惡)이 되는 악순환이 지난 수십년간 지겹게도 되풀이되고 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버렸는데, 각설하고 수능시험은 이러한 입시경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자식들이 경쟁력을 갖춘 믿음직한 젊은이가 되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첫 번째 산인 것이고, 수능 시험일은 그래서 온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요한 날이다.

삼남제약의 김영곤 이사는 고3 시절에 예비고사(당시에는 수능이 그런 이름으로 불리웠다)를 보기 위해 시험 전날 대전에 나가 '용궁여관(금산고등학교 전용 숙소였다지?)'에서 잠을 자는데, 방은 너무 뜨겁고, 객지에서 한 방에 10여 명이 누워 있으니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단다.

설상가상으로 누군가가 신발을 훔쳐가는 바람에 발에 맞지도 않는 작은 신발을 신고 서대전에 있는 충남여고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작년까지는 김영곤이사의 경험보다야 나았겠지만, 새벽 네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전세버스에 올라타 논산으로 향해야 하는 수험생과 부모의 마음은 참으로 쓰렸을 것이다.

많은 금산사람들의 뜻이 합쳐지고, 이러한 불공정한 관행을 시정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선구자들 덕택에 이제 수능시험을 우리의 자식들도 편안하게, 그리고 마음껏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해 주었지만, 문화상회의 장문환씨와 금산학생신문사의 김상윤사장, 그리고 금산군 개발위원회의 노력이 돋보인다.

오죽하면 장문환사장은 금산에서의 수능실시가 확정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옆에 있던 부인(부인이 조금 체구가 작기는 하지만)을 번쩍 들고 '만세!'를 외쳤다고 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심을 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11월 17일 금산고와 금산여고에서는
수능 시험 당일에 시험장으로 지정된 금산고와 금산여고를 둘러보았다.

아침이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20여 명의 재학생들이 시험을 보러 나오는 수험생들을 격려하며 큰 소리로 용기를 북돋아주는 모습을 보니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고생을 했나보다'하는 생각에 마음이 참으로 좋았다.

많은 경찰관들이 패트롤카와 오토바이를 이용해 장내 질서정리와 수험생의 편의를 돌봐주고 있어 더욱 든든한 마음이었다.

그동안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금산에서 수능시험장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동안 논산으로 수험생을 데려가야만 하는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우선 한 시험장에 수험생을 모두 모아 놓고 시험감독을 한다면야 쉬운 일이겠지만, 남/녀 학생과 인문계/자연계가 나뉘고, 제2외국어를 선택하는 기준까지 나뉜다면 이론적으로는 시험보는 반을 16종-32종으로 구분해야 한다.

이러자니 시험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적어도 수험생이 500명 정도는 되어야만 감독과 관리를 위한 수십명의 인원(대개 학교 선생님과 직원들이다)을 투입할 수 있는 경제적인 규모가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것도 사실은 정치적인 방법이었다고 하는데, 표면적으로 금산군이 하나의 시험구역으로 독립된 것은 아니고, 다만 논산의 한 시험지역으로서 금산고와 금산여고가 선택된 것뿐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우리는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택하는 현명한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이다
그동안 수능 성적으로 말해주는 우리 금산의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대한민국의 하위인 충남에서도 하위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논산에서 시험을 보다 보니 적어도 5점 이상은 깎였다'는 핑계를 이제는 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서두에서 11월 17일이 역사적인 날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이제는 수능시험 보러 논산으로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이런 사건을 계기로 우리들도 우리의 자녀에 대해 관심을 가져서 그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또 공부하는 절대적인 시간과 방법에 대해 어른들이 챙겨주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여야만 한다는 뜻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학교 보내고, 또 학원 보낼 비용 대주었다고 어른의 역할을 다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면서 어른이 되는지를 관심깊게 살펴보는 어른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