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신문 2004. 10. 21. 기고]

남이면 역평리와 건천리 사이에, 육백고지의 바로 위에 있는 백령산성(栢嶺山城)은 2003년 3월의 어느 날 충남역사문화원의 강종원 연구위원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잊혀진 고적이었다.

어느 날 눈을 뜬 백령산성은 우리에게 먼 옛날 우리의 선조들의 치열했던 전투를 말없이 들려주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발굴이 끝나자마자 충청남도 기념물 제83호로 지정되어 문화재 대접을 받기 시작했고, 우리가 살고 있는 금산이 과거 삼국시대 말기에는 아주 중요한 전략적 요충이었다는 새로운 금산 역사의 한 편린을 웅변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백제사에 대한 해석을 다시 해야 할 정도로 많은 훌륭한 유물들이 쏟아졌다고 하니, 이곳 금산에 사는 사람의 하나로 괜히 기분이 좋고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을 감출 수 없다.

현재 이 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는 지난? 2003년 3월부터 6개월간 지표 및 시굴조사가 이뤄졌고, 금년 3월부터 2개월 반 동안에 1차 발굴조사가 진행되었을 뿐인데도 이렇게 학계에서 흥분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대단한 물건이 앞으로도 쏟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게다가 발굴의 주최자인 「충남역사문화원」이 충남발전 연구원에서 독립한 이후 첫 작품이 바로 이 백령산성 발굴조사라고 하니, 이 분들도 그 성과를 널리 알리고 자랑하고 싶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겠다.?

♣ 백령산성의 고고학적 의의
이 학자들이 이렇게 백령산성에 대해 큰 의미를 두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우선은 그동안 발굴된 백제산성이 축조된 학술적 의의를 <6하 원칙>에 의한 설명이 가능한 유일한 성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는 기록으로 남긴 것이 너무 적어 마치 추리소설을 쓰는 기분으로 역사를 정리해야 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고, 특히 삼국시대와 그 이전에 대한 역사 중에는 아직도 정립되지 않아 학자들끼리도 논쟁을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성을 하나 발굴해 놓고도 그 유래와 역사적 의미에 대해 딱 떨어지는 결론을 얻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었는데, 백령산성을 발굴하면서는 이런 논쟁의 대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역사적 의미를 확실히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 백령산성의 역사적 의미를 <6하 원칙>에 따라 알아보도록 하자.
·언 제 : 서기 597년 ~ 598년(백제 위덕왕 재위기간)
·어디서 :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
(현재 남이면 역평리와 건천리 사이)
·누 가 : 上 (상부: 백제 왕궁에서 파견된 관리의 직책)
·무엇을 : 길이 206미터의 석축산성
·어떻게 : 현문식(사다리를 타고 출입하는 방식) 산성
·왜 : 신라군의 침입에 대비

다른 역사적 의의도 많다고 한다.
우선 1,400년 전의 모습을 간직한 목조 구조물인 저수용 목곽고(木槨庫) 발견하였는데, 이 전의 백제산성에서도 같은 모양의 저수고는 발견하였지만, 나무가 삭아 없어져 그 용도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백령산성에서는 그 나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이곳이 아마도 「저수로」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학설에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고 한다.

♣ 도대체 어떤 물건들이 나왔기에
총 3,000여 점에 달하는 수많은 명문와(銘文瓦)가 출토되었는데 이 중 耳停? 戊午瓦(百濟瓦? 丁巳瓦, 上? (상부) 등 10점의 특징적인 유물들이 발굴되어 학자들을 흥분하게 했다고 한다.

특기할 것은 지금까지 6자 명문(기와에 6자의 글씨가 새겨진 것)은 지금까지 단 1점 발굴만 발굴 될 정도로 귀중한 것이었는데, 이번 백령산성에서는 다수가 발굴되어 백령산성이 또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율현(栗峴)이라고 새겨진 기와도 발굴되었는데, 이는 지금의 백령(栢嶺:잣고개)가 백제시대에는 밤고개(栗峴)였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순○ 정사와(耳淳○ 丁巳瓦, ○표시는 잘 보이지 않는 글자라는 뜻)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나와 논란을 빚었었는데, 해석이 곤란한 글자가 순(淳)자라는 확정을 지어준 사람이 바로 우리 금산의 서예가 중 한 분인 금산문화원 김현봉과장이었다 한다.

이렇게 우리의 문화재를 발굴하는데 김현봉과장 뿐만 아니라 박범인 문화관광과장과 박홍근씨와 같은 금산사람들의 노력도 대단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그리고 보통 산성이란 것이 지리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어 한번 만들어지면 여러 세대를 통해 사용되기 때문에, 여러 시대의 유물들이 한꺼번에 발굴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렇게 되면 그 산성의 시대적 의의를 찾기가 힘들어지는데, 다행히 백령산성에서는 백제시대의 유물만이 출토되었기 때문에, 산성의 시대적 성격을 규명하고, 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남문(南門)은 현문식(懸門式)으로 축조되었는데, 현재까지 현문식 성은 모두 신라산성으로 간주되었던 관례를 파기하는 역사적으로 아주 의미있는 발굴이기도 하다.

다음 주에는 백령산성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한 번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