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신문 2004. 10. 28. 기고]

이제는 백령산성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찾아보는 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우선 백령산성이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6세기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의 군사력이 엇비슷하여 서로가 서로를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의 양상을 띠던 시기였다.

고구려와 싸우던 백제가 신라에 원조를 요청하기도 하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였다.

결국 이 세력판도에서 밀리는 것으로 판단된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새로운 파트너로 만들면서 전세가 급변하기는 하지만…

백령산성에서 출토된 유물을 분석해 볼 때 산성의 축조시기는 백제 사비기로 추정되고, 기와에 새겨져있는 정사(丁巳)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537년(성왕 15년), 597년(위덕왕 44년), 그리고 서기 657년(의자왕 17년) 중의 한 해이어야 할 것이다.

먼저 537년은 성왕이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하는 바로 전 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수도를 옮기는 대작업을 앞둔 왕이 작은 산성을만들기 위해 힘을 분산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리고 이 시기는 백제가 고구려와 계속 전쟁상태였고, 신라와는 동성왕대에 맺어둔 동맹관계가 아직 유효하던 시기였다.

성왕 26년에 고구려가 한강 북쪽의 독산성을 공략하자 백제는 신라에 원병을 요청하고 이에 신라는 3,000명의 군사를 보내 지원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백령산성은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성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이 성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백령산성이 축조된 시기가 537년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597년(위덕왕 44년)은 어떨까?
위덕왕은 성왕이 신라의 배신으로 신라에게 한강 하류지역을 빼앗기게 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관산성을 공격하다 자신의 3만 대군과 함께 장열한 전사한 뒤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위덕왕 자신이 태자의 신분으로 이 관산성 전투에 참여했었고,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해 백제의 국력은 급격히 약화된 상태에서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라는 두 강적을 모두 상대해야 하는 버거운 싸움을 하게 된다.

따라서 과거 신라와 통하던 교역로는 이제는 전략요충이 될 수밖에 없고, 그제서야 금산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위덕왕은 45년간 왕위에 올랐는데, 신라에 대한 구원(舊怨)을 잊을 수야 없었겠지만, 국력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해 신라에 대한 공격은 소극적이었던데 반해,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인프라의 구축에 힘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런 역사적 사실과 견주어 볼 때 백령산성의 축조시기는 서기 597년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주변을 돌아보면 땅속에 묻혀 있던 기와와 돌조각과 나무조각들이 1,500년 전의 까마득한 옛날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분노와 사람의 훈기를 전해주는 것을 알게 된다.

역사의 한복판에서 고뇌하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우리의 조상들은 물론 한줌의 흙으로 변했겠지만, 그들이 살아온 발자취를 헤아려 보고, 또 우리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정신이 이어지도록 하자면 전문가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 보통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같이 참여한다는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이 땅속을 헤집고 다니는 전문가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또 그들의 올바른 자세로 공부에 전념하게 만드는 채찍도 될 것이니까…

다행히 이번 백령산성의 발굴 성과를 토대로 하여 금산에 산재된 나머지 20여 개의 산성에 대한 조사도 곧 시작될 예정이라고 하고, 많은 사람들이 금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눈을 떴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금산의 24개 성 중 사적으로 지정된 성 하나도 없을 정도로 아직 문화적 성과에 대한 대접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지만, 학자들도, 또 금산군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니, 곧 좋은 소식이 들릴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군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이 세상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먹고 사는 문제이겠지만, 그리고 잘먹고 잘 살수록 더 욕심이 생기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겠지만,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무언가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게 된다.

이런 욕구를 문화적 충족이라는 방향으로 끌고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