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신문 2004. 6. 2. 기고글]

지난 5월26일은 불기 2548년을 봉축하는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이날 아침에 MBC 라디오의 아침 인기 프로인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란 프로그램에 우리 금산에 사는 두 인물인 장석열목사와 진악산 보광사 주지인 보선스님이 출연하여 진행자인 손석희 아나운서와 3자 대면의 형식으로 약 10여 분에 걸친 대화가 방송되었는데, 그 내용이 자못 흥미롭다.

매스컴에서 이 두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기독교의 수호자인 목사님이 부처님 오신 날에 절에서 설교를 하기로 계획이 되어 있다는 것과, 당사자인 장석열목사가 진악산 보광사에서 주지인 보선스님의 주례 하에, 그리고 교회 장로인 류흥수 장로의 축사로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리기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 장목사와 보선스님의 인터뷰 내용 -
우선 인터뷰 내용을 한 번 알아보자.
손석희: 두 분이 알게 된 경위는?

보선스님: 몇 년전 피아니스트인 임동창씨와의 인연으로 우연히 알게 되었다. 만나게 된 것에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인간이 무엇에 동화되는 것보다는 바람이 모든 물체를 지나가듯이 인연이 우리를 알게 한 것이다.

장목사: 나이는 내가 7살쯤 연하이지만, 보선스님은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종교인들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 그는 교리나 이념을 따지는 것보다는 말없이 실천하고, 대상을 의식하지 않는 자연인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서 가식이 없는 진정한 종교인이기도 하다.

손석희: 혹시 양측 신도들에게서 어떤 항의나 지적을 받은 일은 없는가?

장목사: 없다. 산에는 모든 동물과 식물들이 같이 살지만 제각기 자신의 삶을 잘도 영유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데올로기로 뜻이 갈리는 세상이 싫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동화되고 노래하고, 삶을 얘기하고 종교를 얘기하고 있다.

손석희: 보선스님 말씀은 목사님의 그것같이, 그리고 장목사님은 스님처럼 느껴지는 말씀을 한다. 부처님 오신 날 설교할 대강의 내용은 생각해 두었는가?

장목사: 우리가 기독교와 불교를 서로 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성경과 불경의 내용은 같다고 봐도 된다.

법정 스님도 명동성당에서 크리스마스에 법문을 하신 적이 있고, 성철스님도 교회에서 염불소리가 들리고, 법당에서 찬송가가 나오는 세상이야말로 평화로운 세상일 것이라고 설파하신 적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가 부모님의 은덕으로 태어났지만, 우리는 스승이나 종교와 같은 존경할 모델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내용들이 될 것 같다.

손석희: 오는 29일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신다고 했는데, 주례사를 미리 생각해 놓은 것이 있는가?

보선스님: 판에 박힌 인위적인 주례사는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인생을 조금 먼저 산 사람으로 두 신혼부부가 서서 꾸며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을 그 자리에서 얘기해 주려고 한다.

손석희: 두 분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 내공이 모자라다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전수해 주기 바란다.

- 자연스런 상생은 너무나 어렵다 -
종교적인 논쟁은 가끔 친구를 원수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민감한 주제 중 하나이다.

 요즘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알똥말똥한 주제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데, 두 건의 사례에서 판사들도 한 사람은 무죄를,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유죄를 선고했을 정도이니, 우리네 일반인들이 헷갈리는 것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리는 나이를 먹고 삶이란 어떤 것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성향을 알고 있는 친한 친구 사이가 아니면 종교나 정치적인 논쟁을 삼가는 것이 편하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눈치로 알게 된다.

그리고 무슨 떡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먹은 밥 빨리 소화되어 배나 빨리 고파지게 핏대를 올리면서 논쟁을 하고 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는 것도 몇 번의 경험으로 깨우친다.

그러면서 또 우리는 말로는 상생(相生)을 얘기한다. 대통령부터 마을 이웃까지 자연스레 구사하는 이 상생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가지 못하기 때문에 천당, 혹은 극락이라는 세상을 칭송하듯이 우리와 같은 범인(凡人)에게는 너무나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가 아닐 수 없다.

평소에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금전 문제로, 친구의 친구 문제로, 심지어는 선거전의 후유증으로라도 척을 진 사람 하나 없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이가 나빠진 사람들이 서로 그 동안의 오해를 풀고 ‘이제는 다시 옛날과 같이 사이좋게 살아보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좋은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또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다.

-하지만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
위의 상생의 예로 들은 목사님과 스님은 구도자의 일생을 살아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우리네 범인들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경지의 공부를 했을 것이고, 따라서 그 분들끼리 의기가 투합되고 상생의 합창을 불렀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서로 반목하고 미워하고 또 싸우면서 사는 것이 우리 모두를 괴롭게 하는 일이라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화해하고 이해해서 상생의 길로 가기 위한 노력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요즘과 같은 어지러운 세상에 오랜만에 좋은 얘기를, 그것도 우리 금산에 사는 분들의 말씀을 들은 김에, 그리고 부처님 오신 좋은 날을 맞이한 김에 희망을 발견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말해본다.

“우리 모두 상생합시다."